AI 진단 알고리즘은 탁월하지만, 맥락을 해석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의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영상의학, 병리학, 내과 분야에서는 AI가 인간 의사보다 더 높은 정확도로 질병을 예측하거나 진단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예를 들어, 폐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 사용되는 딥러닝 기반 CT 판독 알고리즘은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실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의 루닛(Lunit)은 유방암, 폐결핵 등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글로벌 의료기관에 진입했다. 이러한 기술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며, 일정한 패턴 인식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다.
그러나 문제는 '맥락(context)'의 이해에서 발생한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병명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진단과 함께 자신의 삶 전체, 심리 상태, 가족 상황까지 고려된 ‘맞춤형 해석’을 원한다. 예컨대 같은 당뇨병 진단을 받더라도, 20대 여성 환자와 70대 노년 환자에게 필요한 설명과 치료 접근은 전혀 다르다. AI는 정형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은 잘하지만, 비정형적이고 개인화된 삶의 배경을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질병을 해석하는 것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 의사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진료’는 의료 행위이기 전에 ‘윤리적 만남’이다
의료는 단순히 기술적 행위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가 아니다. 환자와 의사의 만남은 곧 윤리적 신뢰에 기반한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이다.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뿐 아니라, 삶의 위기와 불안을 의사에게 고백하며, 의사는 이 고백을 받아들이는 존재로서 깊은 윤리적 책임을 지닌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설명 능력’이 아니라, 공감, 정서적 민감성, 신뢰 형성 능력이다. 최근 의료 인문학이 각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보다,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AI는 윤리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기술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환자의 가치관이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할 수 없다. 예컨대, 말기 암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권하는 것과 완화의료를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의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인생관과 죽음에 대한 철학까지 포괄하는 문제다. 이런 선택은 반드시 인간 의사의 윤리적 숙고와 판단이 필요하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통찰은 프로그래밍될 수 없다. 의사가 단지 진단 기계가 아니라 '도덕적 주체'여야 하는 이유다.
AI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판단한다
의학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의 학문이다. 환자의 상태는 항상 예측 불가능하며, 병의 진행도, 치료 반응도 정해진 수식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AI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확률과 패턴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이나 모호한 증상 앞에서는 오류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의료현장의 1차 진료, 응급 상황, 복합적 질병군 앞에서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 판단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닌, 숙련된 임상의의 몫이다.
예를 들어, 임신 초기 출혈을 겪는 여성이 병원을 찾았다고 하자. AI는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특정 검사를 권고할 수 있지만, 환자의 나이, 임신 경력, 심리적 불안, 가족의 반응 등 수많은 요소를 종합하여 말 한마디를 선택하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다. 의사는 종종 완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과정에서 책임을 감당한다. 이것이 바로 ‘의사의 직관’ 또는 ‘임상적 판단력’이라 불리는 영역이며, 이는 데이터를 넘어선 복잡한 인간적 통찰을 요구한다. AI는 예측은 잘하지만, 결단은 내릴 수 없다—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다.
의료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 있다
앞으로 의료 현장은 AI, 웨어러블 기기, 빅데이터, 로봇 수술 등으로 점점 더 자동화되고 정밀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 중심성의 가치도 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미래의 의사는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미의 중개자’가 되어야 한다.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기술을 해석하며, 궁극적으로 환자가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미래 의사의 핵심 역할이다.
이런 관점에서, 의료의 미래는 기술보다 사람에 달려 있다. AI는 도구이고, 의사는 해석자다. 특히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정신건강 문제처럼 복잡한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는 분야일수록 인간적 의사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환자는 병이 아닌 사람으로 다뤄져야 하며,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답이 아니라 공감, 맥락, 윤리, 책임, 인간성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러한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인간 의사뿐이다. 미래는 기술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의료에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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